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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17. 2024

우리 아들은 그게 없어

진짜 없어, 정말 없어

2024. 3. 1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아들이 엄마한테 왜 한숨을 쉬는 거지?"

"아, 왜?"

"뭐? 왜라니? 말투가 왜 그래?"

"에휴, 진짜."

평소의 애교쟁이 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설마 저것은 말로만 듣던 그 질, 풍, 노, 도?


"엄마한테 하는 말투가 좀 신경질적인 것 같은데?"

"내가 뭘?"

"우리 아들은 평소에 안 그러는데 뭐가 문제야? 말해 봐."

"어휴, 진짜."

아들이 계속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게다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뭐가 문제인 거람? 여태 잘 놀아놓고 왜 저러냔 말이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눈 감아봐요, 줄 게 있어. 자 받아요, 내 마음이야."

"엄마, 내가 엄마를 위해서 과자를 사 왔어."

"엄마, 잘 봐봐. 엄마를 향한 내 사랑이야."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아이 러브 마이 맘 더 모스트 인 더 월드.(I love my mom the most in the world.)(영어 번역기를 돌려서 저 표현을 자꾸 외우더니 시도 때도 없이 나한테 써먹는다.)"

등등, 들으면 들을수록 입이 헤벌쭉 벌어지는 온갖 말들을 늘어놓을 땐 언제고 왜 변심한 거람?

내가 아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잘못한 게 있었나?

저렇게까지 나올 정도였나?

난 도저히 짐작 가는 일이 없었다.

딸을 호출했다.

"합격아, 우리 아들이 왜 저럴까? 혹시 알아?"

"아까 그 일 때문인가 봐, 엄마."

여기서 아까 그 일이라 함은 아들이 어떤 요구를 했는데 내가 들어주지 않았던 바로 그 일이었다.

나는 거절할만해서 거절한 건데 아들 딴에는 그게 마음 상했던가 보았다.

"우리 아들이 정말 누나 말대로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없었지만 분위기상 그게 가장 강력한 이유였다.

아들은 계속 내 말에 마지못해 시큰둥하게 대답했고 표정도 어두워졌다.

내가 기분을 풀어주려고 옆에 가면 나를 피하기까지 했다.

그게 그 정도까지 반응할 일인가 싶었다.

"계속 그렇게 말 안 할 거야? 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뭐."

싫다는 사람 자꾸 귀찮게 하는 것도 안 내켜서 아들이 기분이 풀어질 때까지 그냥 두기로 했다.

한두 시간 아들은 혼자 책도 보고 할 일을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내게 먹고 싶은 게 있다고 주문도 했을 테고, 종이접기라도 해서 내게 자랑했을 테고,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테고, 제 누나와 함께 까불고 잘 놀았을 거였다. 하지만 그날은 어째 좀 오래간다 싶었다.

오후 3시가 되어가자 아들이 합기도에 가려고 도복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보통은 3시 20분이 다 되어갈 때쯤에나 집을 나서는데 그날은 3시가 되기도 전에 말이다.

그만큼 아들은 내게 단단히 마음 상했다는 거다.

"벌써 가게?"

딸이 물어도 대답도 없었다.

딸과 아들을 같은 합기도 학원을 같은 시간에 간다.

별일이 없는 한 둘이 세트로 항상 같이 집을 나서는 편인데 그날은 아들이 서둘러 집을 나서려고 했다.

누나 말에 대꾸도 없이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름 내게 시위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본인이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아무리 내가 달래도 소용없으니 일단은 그대로 보냈다.

나라고 해서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잘나가다가 한 번씩 아들은 그럴 때가 있긴 했다.

저러다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걸까?

진짜 별일 아닌 것 같았는데(물론 내 기준에서만이라는 게 문제긴 하다) 아들은 단단히 마음 상했다.

정말 본격적인 질풍노도의 시기가 닥치면 어쩐담?

마침 초등 교사인 친구가 3, 4학년이면 사춘기라고, 올 게 온 거라고, 요즘 애들은 그렇다는 흉흉한 소문을 퍼뜨리는 통에 나는 그만 머리가 복잡해졌다.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돌아왔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아들과 딸은 현관문을 열고 오면서도 둘이 웃고 장난치고 한 시간 전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아들이 갑자기 내게 달려들었다.

"엄마, 죄송해요, 아까 엄마한테 화내서."

세상에, 불과 몇 시간 만에 자수하고 광명 찾는 어린이라니!

"아니야, 우리 아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어. 엄마도 미안해. 아까 화내서."

오는 사과의 말이 곱디고우니 가는 사과의 말도 고울 수밖에.

"엄마, 사랑해요."

그날도 마무리로 그 후렴구를 잊지 않으셨다.

손하트까지 애교스럽게 만들어 보여주는 센스 좀 보라지.

"역시 우리 아들은 뒤끝이 없다니까."

"어? 내가 없긴 뭐가 없다고 그래?"

"뒤끝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인데?"

"응, 마음에 좀 안 좋은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야. 서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어도 그걸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서 미워하거나 안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뭐 그런 의미의 관용구라고 할 수 있지."

"관용구는 또 뭔데?"

그 와중에 나는 아들에게 관용구의 뜻까지 진도를 나가고 말았다.

물론 옆에서 딸이 혀를 끌끌 차고 있었고 말이다.

"하여튼 엄마는."

딸도 할 말은 하는 어린이다.

"아, 그래? 그럼 그게 좋은 뜻이야, 엄마? 뒤끝 없다는 게?"

"좀 그런 편이지. 아무튼 우리 아들은 뒤끝이 없어서 정말 좋다니까!"

"나는 뒤끝이 없어. 그치, 엄마?"

"그럼. 당연하지. 진짜 뒤끝이 없어. 좀 속상한 일 있어도 두고두고 마음에 담고 있지도 않고. 자, 이제 뒤끝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세뇌시킨다'라고 한다지 아마?

다만, 나는 이걸 '산교육'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우리 아드님은 뒤끝이 없다.

정말 없다.

하나도 없다.

뉘 집 아들인고?

역시 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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