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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Feb 01. 2018

무엇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가?

웰빙에 대한 철학적 이론들

잘 산다[well-being]는 건 뭘까? 이 질문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일단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는 물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런 삶을 사는 방법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물론 철학에서도 웰빙은 중요한 개념이다. 웰빙을 증가시키는 행위가 곧 옳은 행위라 주장하는 공리주의자에게나 그런 공리주의자를 공격하는 철학자에게나.



I 쾌락주의적 이론


쾌락주의적 이론hedonistic theory에 따르면 웰빙은 쾌락pleasure 혹은 고통의 부재absence of pain다. 목이 마른데 물이 마시거나, 기분 좋은 음악을 듣거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보람을 느낄 때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등 고전적 공리주의자들이 웰빙을 이렇게 바라보았다.

물론, 둘의 생각이 완전히 같았던 건 아니다. 벤담은 그저 ①강도intensity, ②지속성duration, ③확실성certainty, ④접근성propinquity, ⑤양산성fecundity, ⑥순수성purity 그리고 ⑦범위extent 등을 기준으로 쾌락과 고통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당사자가 쾌락 혹은 고통의 부재를 얼마나 선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벤담의 견해는 "협의의 쾌락주의narrow hedonism"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밀은 좀 다르다. 그는 벤담과 달리 쾌락에도 질적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 제2장 중 "상위와 하위 쾌락Higher and Lower Pleasure"이란 제목을 단 꼭지에서 그는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배부른 바보가 되는 것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는 저 유명한 문장을 남긴다. 당사자가 어떤 쾌락을 더 선호하면 그 쾌락의 가치는 더 높으나, 강렬한 쾌락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선호가 없다면 그 가치는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밀의 입장은 "선호 쾌락주의preference-hedonism"라고 불린다.



II 욕구 충족 이론


쾌락주의적 이론은 체험주의experientialism에 속한다. 삶의 질이 오로지 당사자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서만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자체로 그의 삶의 질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욕구 충족 이론desire satisfaction theory는 체험주의를 거부한다. 체험주의(에 속하는 쾌락주의)는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매일 밤 뇌에 전극을 꽂아 모든 불쾌한 기억을 지우고 엄청난 쾌락을 느끼기만 한다면 충분히 좋은 삶을 사는 것이라는 반직관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욕구 충족 이론에 따르면 삶의 질은 당사자의 욕구가 얼마나 충족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충족되는 욕구의 수와 강도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 그리고 양쪽 모두가 중요하다면 둘은 어느 정도로 고려되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는 별론이다.)

이때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발생하는 쾌락 혹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고통 등을 당사자가 체험할 필요는 없다. 가령 달콤한 거짓말을 듣는 이는 쾌락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가 거짓말을 듣지 않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 한 그러한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 채로 남는다. 이때 쾌락주의자는 이 사람의 삶이 나아진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욕구 충족 이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욕구 충족 이론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쾌락주의 이론과 달리) 이미 죽은, 그래서 쾌락과 고통을 체험할 수 없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죽은 뒤라도 그 욕구는 얼마든지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가 멈추기를 바라던 환경운동가의 삶은 지구 온난화가 멈추는 순간 더 좋은 것이 된다. 그가 지금 살아있지 않더라도. 어찌 됐든 그의 욕구는 충족되는 것이니까.

반면, 쾌락주의적 이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죽었고, 더 이상 그 무엇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MIT를 높은 성적으로 졸업한 아이언맨이 평생 여의도 공원 내 잔디 이파리가 몇 개인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내는 방법이나 연구하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아이언맨이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그럼 아이언맨의 삶은 더 좋은 것이 되나? 어쩐지 이런 욕구는 충족되더라도 당사자의 삶을 더 높이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단순히 욕구를 충족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면 좀 나으려나? 그런데 욕구가 합리적이라는 건 뭘까?



III 객관적 목록 이론


非체험주의non-experientialism에 속하는 또 하나의 이론이 있다. 바로 객관적 목록 이론objective list theory이다.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목록에 오른 것들을 실제로 체험하는지, 그리고 욕망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우정, 사랑, 지식,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좋다고 생각한다. 객관적 목록 이론은 이런 것들을 갖춘 삶이 좋은 삶이라고 말한다. (객관적 목록 이론을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그 목록에 올라야 하느냐는 문제는 유효한 것으로 남는다.)


이 이론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이 뒤따른다. 정말 누군가의 삶이 바로 그 사람의 쾌락 혹은 욕구와 무관하게 더 좋거나 더 나쁜 삶이 될 수 있는 걸까? 객관적 목록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것은 불변하는가? 목록은 오로지 하나만 존재하는가? 여럿이라면 무엇이 우선하는가? 같은 목록에 오른 것들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가?



물론 위 세 이론이 전부는 아니다. 어느 하나만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모조리 내쳐야 할 이유도 없다.

이미 철학자들은 이들 이론을 여러 방식으로 넘어서는 중이다.



#윤리학 #철학적_인간학 #웰빙 #체험주의 #쾌락주의 #공리주의 #비체험주의 #욕구_층족_이론 #객관적_목록_이론



Derek Parfit, "What Makes Someone's Life Go Best," in Reasons and Person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493-502 (Appendix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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