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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Feb 28. 2024

시어머니에게 해삼을 잔뜩 보냈다







마지막으로 시어머니를 본 것은 2년전쯤이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을 하고 1년반쯤 지난 뒤였던 것 같다. 그동안 곰도리에게만 문제제기 했던 것이 전혀 전달되지 않고 있으며, 되려 시댁을 분노하고 참지 못해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을 바로잡고자 했다. 



나는 시댁으로 갔다. 그리고 말했다. 어머님이 하는 말이 저는 굉장히 불쾌하니 이제 만나면 서로 좋은 말만 하는게 어떠냐고. 시어머니는 나의 말에 어른이 그 정도도 이야기를 못하냐 반박했고, 나는 어른이건 애건 남이 듣기싫어하는 소리를 당연히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세월이 달랐던 두 여자는 한참을 싸웠고, 곰돌은 그것을 지켜보다 말고 더이상 싸우지 말고 나가자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며 시댁의 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후 입장과 생각, 살아온 세월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두 여자는 누구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라며 면전에서 혹은 뒤에서 욕을 했다. 내 글이 몹시 불쾌했던 누군가는 자신이 활동하는 곳에 내 글을 퍼다날랐고, 리빙스톤을 표면적인 글 하나로 마주한 사람들은 나와 시어머니, 그리고 친정엄마까지 싸잡아 욕을 했다. 얼굴도 본적 없는 세 여자의 시시비비 가르는 그들은 더할나위없이 현명한 인생을 사는 듯 지조있고 논리적으로 비난했다. 그 비난은 무척이나 아팠다. 



언제까지 정정하실 것 같았던 시어머니가 최근 많이 편찮으셨다. 곰돌은 걱정했고, 나도 많이 걱정이 되었다. 애써 화해를 한 적은 없지만 나는 서울에 어머니를 보러 올라간다는 곰돌의 말에 전날 바다로 가서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이것저것 잡아왔다. 집에 돌아와 상하지 않도록 잘 손질해 냉동팩 몇개와 함께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시어머니는 제주와 육지의 한가운데 위치한 거문도 출신이다. 나는 거문도라는 섬은 많이 들어봤지만 어디에 위치한지는 시어머니의 출신을 듣고서야 지도를 펴 찾아봤다. 그리고 거문도란 섬의 동떨어짐을 알아챘을 땐 시어머니는 외국보다 더 먼 뱃길을 타고 서울에 오신분이란걸 깨달았다. 거문도는 정말이지 한반도와 가까운지 제주와 가까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남해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남해의 한복판에 위치한 거문도의 어느 가난한 집 여덟 딸 중 막내딸로 태어난 시어머니는 일찍이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셨는데, 시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딸들은 대부분 거문도에서 해녀를 하셨고, 하신다. 하셨단건 이미 돌아가신 분도 있다는 뜻이었다. 서울 토박이에 서울말밖에 쓸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 큰 도시 빌딩 숲에서 결혼을 했던 곰돌과 나였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외가댁은 대부분 해녀이고, 나의 아버지쪽 친가댁은 모두 어부 아니면 해녀였단건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겠다. 남해바다는 나와 곰돌 사이, 서울이란 도시의 아스팔트 아래를 가로지르는 비밀스러운 통로같은 것이었을까. 



거문도 출신 시어머니는 해삼을 좋아하신단다. 곰돌이가 시어머니와 제주도를 여행했을 때 매 끼 해삼을 꼭 챙겨먹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주었는데, 나는 해삼이란건 밑반찬으로 조금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돈을 주고 사먹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해삼을 돈 주고 따로 사먹었어?"


"응. 서울에선 해삼을 구하기도 먹기도 힘들거든. 그래서 제주에 간김에 매끼 먹었지."


"서울에선 해삼을 구할 수 없었어?"



서울에서 18년을 살다온 나는 해삼이란게 서울에선 귀한 녀석이었단걸 정작 해삼을 수백마리씩 잡는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해삼을 아주 좋아하시고 해삼이 흔한 곳이라면 매끼 돈을 주고 반찬처럼 드신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곰도리가 서울로 가기 전날 싸부님께 특별 요청을 했고 싸부는 크고 질 좋은 해삼이 많은 비밀 바다 냉장고로 나를 데려갔다. 싸부의 비밀 냉장고에서 크고 좋아보이는 녀석들만 데려와 곰도리가 서울로 가기 전날 예쁘게 손질해 아이스박스에 넣고 손에 들려 서울로 올려 보냈다. 



"곰돌. 이거 내가 잡아온거라고 하지마. 그냥 부산이라 흔해서 샀다고 해줘."


"왜?"



염려가 되었다. 혹 내가 잡았다고 하면 좋아하는 음식을 먹다가 기분이 나쁘실까봐. 좋은 마음으로 잡아온 해삼인데 행복한 마음으로 드시길 바랬다. 고집쟁이 영감. 만나서 말만 이쁘게 해도 이런 해삼같은거야 겨울에도 들어가 잡아다주지. 



"뭘 그래."



곰돌은 퉁명스럽게 해삼이 들어있는 아이스박스를 들고 서울로 가서 기어이 내가 바다에서 잡아온 해삼이라고 말을 했었던가보다. 미운 며느리인 리빙이가 잡아온 해삼이란 말을 듣고서도 시어머니는 맛있게 드셨고, 너무 많은 해삼에 남은건 손질하여 뜨거운물에 살짝 데쳐 얼려두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음식이니 두고두고 먹겠다고 하나도 남김없이 냉장고로 들어갔다며. 서울에서 돌아온 곰돌은 그날따라 가벼운 말걸음과 기분좋은 얼굴로 집에 들어오더니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라고 했다. 아이스박스에는 솜씨좋은 시어머니가 담근 김치가 네 종류나 들어 있었다.  






당위와 논리는 개인을 배제한다. 배제당한 개인은 불합리와 모순을 느끼지만 쉽게 저항할 수 없다. 모두가 편리함을 느끼고 옳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의견을 내세운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며, 굳이 고집을 부리고자 한다면 집단은 폭력적으로 변한다. 보통의 경우 "너 때문에 모두가 불행하다.", "좋은게 좋은거지 너만 왜 그래."라는 말로 시작해 굴복하지 않는다면 더 강압적으로 개인을 짓누른다. 최대다수의 행복이 선이라는 벤자민버튼의 공리주의는 철학적 명명이 없더라도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가 행복하다면 모든 명제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는 얼마나 위험한가. 그러한 사회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나 캄보디아 크메르정권의 킬링필드도 정당화될 수 있다. 



2년전 시어머니와 싸웠던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입장이 옳았다는 것도 아니다. 나와 시어머니는 입장이 달랐으므로 지금에와서 선악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결혼이라는 제도하에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외로이 맞서야 한다는 것은 여전한 현실이다. 



나는 해삼을 보냈고 시어머니는 김치를 보냈다. 부산 출신의 나와 거문도 출신의 시어머니는 앞으로 어떤 인연과 관계를 이어나가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2년동안 난 가끔 시어머니가 잘 계시는지 궁금했는데 시어머니도 내가 궁금할지도 모르겠단 것이다. 시어머니 나름의 이해와 내 나름의 배려를 한다면 우린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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