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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Apr 30. 2024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

네?? 고생스럽게 왜 공부를 열심히 하냐고요? ㅣPART 3

또다시 목요일. 오전에 학생들에게 폭풍 가르침+잔소리를 쏟아내고 이 동네의 커피 맛있는 집 구석자리에서 고개 푹 숙이고 노트를 꺼내 들었다. 왜 구석에 짱 박혀(언어 죄송) 있냐고?

나의 애정하는 동료들도 이 카페를 애용하는 걸 알기에 잘못 걸리면 한 시간 숨도 안 쉬고 수다 당첨이기 때문. 동료들을 애정하지만 내 쉬는 시간 내가 지킨다!


지난 연재글을 올린 후 여기저기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3만명 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다니! 요즘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의대'라는 단어가 나의 낚시성 제목에 들어가서였을까? (낚시는 성공적이었다 한다.)

일기 쓰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 많은 사람이 읽기 시작하니 내 글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고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스위스 전체를 대변하는 게 아닌데, 나의 감상의 단면만을 읽고 스위스 전체를 논한다고 받아들여지면 어쩌지? 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아무래도 나는 한국인의 눈에 생소한, 허걱스러운 신기한 경험들이 원동력이 되어서 "왠열, 이런 일도 있었다오." 하는 류의 글들을 많이 쓰게 될 터인데,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한 것을 읽는 이들이 "여기는 이러기도 해"가 아닌 "여기는 다 그래"로 이해하면 어쩌지 하는 우려도 생겼다.


그런 와중에 브런치에서 사루비아라는 닉네임으로 내 글에 자주 출몰하시는 분과 통화를 했다.

참고로 사루비아님은 우리 엄마로 내 글에 누가 봐도 엄마인데 아닌 척 티 나게 댓글을 남기시는 분이다. 단골멘트: 지나가는 행인 2, 자까님 사랑해요.. 등등..

너무 티 나게 활동을 하시길래 내 확 까버리련다. (엄밍아웃) 자매품 아카시아님도 있음. ㅎㅎ

아무튼, 사루비아님 말씀하시길

"어머, 그래! 그렇게 모든 직업들이 삶이 보장되는구나! 좋은 나라네. 그래도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 "

"응, 맞아 엄마. "

그래, 맞다. 전 글에도 잠깐 언급했는데 여기도 뜻 한 바 있는 이들이 가방끈 수선해 가며 공부를 많이 하기도, 유학을, 높은 학위를 따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임금이 그러지 않은 이들보다 현저히 높기도 하고 그걸 뒤늦게 깨닫고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학위를 따는 사람들도 내 주위에 몇 명 있다. 다만 내가 한 관찰은 의사와 견줄만한 고소득 직업군에서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 실무를 바탕으로 경력을 쌓이면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저번에도 등장한 통찰력이 깊은 나의 스위스 정보통T 언니에 의하면, 사실 교육 수준별 프리미엄은 스위스도 한국 못지않은데, 잘 드러나지 않는 거라 한다. 이걸 공론화하지 않는 이유는 평등주의사상이 깊은 스위스인의 정서와 자부심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그러니 우리 엄마의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 " 나의 글을 꿰뚫어 보는 현답이다.

사루비아님,  아카시아님과 10여 년 전에 리기산 나들이
먼산 보는 재미

한국의 나의 친구는 5,6 학년 성적으로 벌써 진로가 결정된다는 소리에 놀랐다며 좀 빠른 감이 있는 거 아냐?라고 물었는데, 스위스 학교에 12년째 몸담고 있는 내가 생각했을 때 전혀 빠르지 않다.

지금은 중, 고등학교 학생들 위주로 가르치지만, 예전에는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쳤었는데 5, 6학년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이 학생이 인문계를 갈지 직업학교로 갈지 돗자리만 안 깔았지 내 눈에는 보인다. 학년말이 되어 "너, 인문계 진학하지?" 혹은 "직업학교 가지?" 하고 물으면 다들 "엥? 어떻게 알았어?" 놀라며 물어보는데 "응, 그냥 알아." 하고 대답하곤 했다. 예외적으로 예상이 틀릴 때도 있었는데 그건 전에 얘기한 소수의 '학교가 멀어서'(차로 10분 거리임), '급식이 영양가가 없어서'의 이유로 성적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인문계 진학을 포기(혹은 거부) 한 경우이다.


그래서 스위스 아주미 너 어떻게 알았니? 라고 물어보시면 대답은 두 가지다.

이해력과 문제 해결 능력. 같은 곡을 줘도 연습해 오는 방법과 몇 번 같은 설명을 했을 때 다른 곳에 응용할 수 있는가 등을 보면 대충 각이 잡힌다. 나의 학생이면 무조건 연주해야 하는 곡이 한곡이 있는데 모두가 어려워하는 마의 몇 마디가 있다. 그 phrase는 마디가 바뀌는 곳에서 화성은 바뀌는데 음은 같은 음을 끌고 가다 바뀐 화성과 만나는 phrase인데, 학생들이 열이면 열 다 헷갈려한다. 나에게 이 곡은 학생들의 지도방향의 지표가 되었던 곡으로, 몇 번 연습 후 나름대로의 방법을 터득해 이해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끝까지 한 번도 맞게 연주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결과는 나의 예상을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다.

근데 스위스 아주미야, 그건 음악성의 유무도 작용하지 않을까 물으신다면, 놀라시겠지만 음악도 공부머리가 받쳐줘야 되는데 수학과도 연관성이 많아서 수학 잘하는 애들이 원래 음악도 잘한다. 수학이 박자, 리듬감과도 관련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음악의 타이밍과도 연결되기에 음악성은 수학적 머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내 자랑 같지만(원래 이 뒤에 오는 말은 100% 자랑임) 이 아주미도 공부 잘했었다. 못 믿겠으면 사루비아님께 확인요망.

실제로 J.S.Bach 바흐의 곡들은 수학적으로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학술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의 음악을 연주할 때면 그의 수학적인 면모가 음악에 그대로 녹아 있어 수학문제를 푸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상 잠시 갑분 본업모드였습니다. ㅎㅎ 역시 본업 모드로 가면 사람이 노잼이 된다!


잠시 얘기가 또 산으로 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요지는,

공부머리가 있는 아이와 공부 머리는 없지만 다른 재능이 있는 아이를 분류해서 일찍부터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갈 사람은 적성 찾아가는 게 교사인 내가 봤을 땐 바람직하다. 더구나 그렇게 적성을 찾아 시작한 일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보장이 된다면 더더욱.

얼마 전 라헬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뭐 할 때 행복해?" 내가 맨날 "라헬이 행복하면 됐어." 류의 말을 하니(툭 치면 영혼 없이 나오기도 하는 대사임) 자기도 어느 날 궁금해졌나 보다.

친정 아빠의 쾌유 소식, 라헬의 첫 영성체, 남편과의 소소한 일상들.. 여러 가지를 읊었더니,

"아니, 엄마가 뭐 할 때 행복하냐고."

"응...? 엄마는 얼마 전에 바이올린 섹션 리드 할 때 행복했어."

객원 단원으로 나가는 오케스트라에서 처음으로 수석을 맡았는데, 그때 마음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한국이나 스위스나 컴퓨터가 사람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어떤 방향으로 아이들을 인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모들은 있을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 자리한 지금 현재 나의 대답은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개발시켜 주는 것이다. 사람 사는 것 거기서 거기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자!


오늘 산책길에 마주친 소떼. 아, 음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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