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 뭐 하러 가냐고 다들 물어봤었죠?
1월 27일,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6일 동안 쉬게 됐다. 오랜만에 주어진 긴 휴식이라 짧게나마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여행지를 정하는 일은 간단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인적 드문 소박한 동네면 됐다. 그리고 커피 한 잔에 글을 쓰거나 책 읽을 조용한 카페도 있어야 한다. 아, 도시를 느끼며 달릴 수 있는 장소는 필수다. 음... 다시 보니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어찌 됐든 후보지를 좁혀 전북 남원으로 결정했다. 내가 묵을 숙소와 번화가를 중심으로 양재천 같은 남원 요천이 있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남원 여행을 계획했다고 말하니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혼자 남원에서 뭐 하냐고, 할 만한 게 있냐고. 가기 전부터 로드 뷰로 보기만 해도 가슴 뛰는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시는 무궁화호 기차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남원에 도착하자마자 육회비빔밥을 먹으러 갔다. 살면서 먹어본 육회비빔밥 중에 가장 신선하고 맛있었다. 분명 탄수화물 줄인다고 밥 절반을 덜어놨는데 어느새 밥 한 공기가 사라지는 마법을 보여줬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꺼냈다. 브런치 글을 쓸까, 블로그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블로그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최근 구매한 신발 리뷰를 작성했다. 운이 좋았을까? 리뷰 글은 상위 노출되어 방문자 수가 2배 이상 늘어났다. 남원에서의 모든 행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만 같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광한루원에 갔다. '한옥'하면 떠오르는 경주와 전주가 아닌 남원에서도 한국 건축의 미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살짝 옆구리가 시렸다. 괜히 헤드폰을 꺼내 감성적인 음악을 들어본다. 이 날은 유독 날씨가 좋았고 별도 잘 보였다.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40분 정도 걸었을까,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나는 숙소 앞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7시, 알람이 울렸다. 어제 하루 2만 보를 걸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욱 일어나기 힘들었다. 알람을 무시하고 자다 깨다 반복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렸다. 헐레벌떡 일어나 달리기 위해 챙겨 온 옷들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러닝 패션의 완성인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숙소 바로 앞 남원 요천을 뛰기 시작했다.
바람결은 날카로웠고 몸은 아직 침대 속 전기장판을 원했다. 달리다 보면 괜찮아질 걸 알면서도 다시 숙소로 돌아가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계속됐다. 그런데 내 귀찮음은 악마를 이겼다. 이미 다시 되돌아가는 게 더 귀찮다.
뛰다 보니 아침 일찍 걷기 운동을 하시는 어르신들을 지나쳤다. 이렇게 걷기(뛰기) 좋은 장소를 바라보기만 하는 건 '도로를 깔아준 남원 시청 관계자분들이 슬퍼할 것 같다'는 오지랖도 부렸다. 어쨌건 뛰다 보니 4km를 넘겼고 계속 부는 찬바람에 귀가 시렸다. '귀마개라도 챙겨 올 걸'하는 후회와 동시에, 아침 공복에 '8km도 충분하지'라는 합리화를 하며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달리는 내내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을 마주했다. 감히 '인생이란 이런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힘들고 비슷한 일상을 매일 달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달리다 보면 유독 시선이 가는 풍경과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지점이 있다. 그런 순간은 나에게 영감을 주고 계속해서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내 인생에도 그런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고 있다.
버티기가 힘들지 버티면 이긴다.
호재가 호재가 아니고 악재가 악재가 아니다.
최근 유튜브 핑계고 채널에서 개그맨 지석진 님이 했던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마냥 좋은 건 없었다. 그렇다고 매번 최악이지도 않았다. 그저 나에게 직면한 상황들을 버티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올해 첫 달리기 여행지인 남원을 시작으로, 앞으로 어디까지 달려 나갈지 기대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