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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Apr 27.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매운 주꾸미>


요즘 포장해 온 음식을 같이 곁들여먹는 일이 잦습니다.

외식하기 좋은 나라에서 사는 즐거움이죠.

맛있는 식당 음식과 집 반찬을 같이 곁들여 먹으면 얼마나 조화롭게요.


식 솜씨가 좋은 시어머니는 식당가시면  웬만해선 맛있다고 안 하세요.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도 싫어하시죠.


그런데도 자주 포장해 오시는 음식이  'xxx할매 주꾸미'입니다.

지금은 가격이 올라 만오천 원이지만 그전까진 만원의 가격으로 가족이 한 끼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었어요.


한국인은 매운맛 아닙니까.

전 맵찔이지만 회사에서 일할 때 과로로 시달릴 때마다 직원들과 매운 낙지를 먹으러 다녔어요.

그때부터 '매운맛 테라피'를 알게 됐죠.

너무 매워 어질어질 아무 생각도 안 나, 뒤통수에 땀이 나기 시작하면 짜증이 나는데 이상하게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


시어머니는 친구분들과 나눈 대화를 오늘도 들려주십니다. 누구네 딸이 골프복 가게를 하는데 부자라더라, 누구네 아들이 회사에서 가족과 해외 가는 비용을 대줬다더라, 임대수익이 많아서 죽을 때까지 가진 돈을 다 못쓸 할머니 얘기 등등 돈자랑배틀이 벌어진답니다.

할머니들이 자신은 물론 자손들 돈자랑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면 다들 놀라실 겁니다.


젊을 때 고춧가루를 팔고, 떡을 팔아 뼈 빠지게 장사해서 가족 봉양을 했던 대단한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 여유를 찾았으니 성공을 자랑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하지만 내 돈 자랑, 내 자식의 돈 자랑만 하다가 가기엔 인생이 너무 씁쓸한 것 아닐까요?


남보다 더 많이 벌어야 자랑에서 이긴다면 경쟁과 우울밖에 남지 않겠지요. 치열하게 살아 일구어낸 여유 뒤에 돈만 남아 있는 셈이죠.


가족이 매운 주꾸미를 하하흡흡, 나눠 먹는 것이 자랑거리고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과 문학, 우주의 신비를 얘기하며 나이 드는 한량 같은 할머니가 되는 것이 장래희망입니다.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설마 거기에서도 어느 그림이 몇 억에 팔렸다더라, 이런 얘기만 서로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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