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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승 Apr 29. 2024

열어 보기 전까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만두처럼

냉동만두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음식, 떡만둣국

냉동만두를 최초로 먹었던 때를 기억한다. 


초등학생 6학년 무렵이었을 거다. 어느 날 새벽, 엄마가 흔들어 깨웠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엄마의 서늘한 표정과 그 옆으로 커다란 가방이 보였다. 나는 겨우 열 세 살짜리였지만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 어린 동생도 투정 없이 일어나 외투를 입었다. 그리고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갔다. 아빠가 며칠 째 집에 오지 않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도착한 곳은 서울역. 아직 구 서울역사에 기차가 다니던 때였다. 엄마는 기차표를 산 후 허기를 채우려 역사  앞 어느 가게로 들어갔다. 지금으로 치자면 편의점 비슷한 곳이었는데 상품이 많지는 않았고, 요깃거리 몇 가지 파는 게 다였다. 내부는 어두운 데다 비좁고, 앉을만한 의자 한 대 없었다. 그나마 창가 쪽 기다란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등을 기댄 채 음식을 가지러 간 엄마를 눈으로 쫒았다. 엄마는 전자레인지에다 무언가 넣어 데운 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였다. 


당시 나는 가장 친한 애 부모가 만둣가게를 운영했기 때문에 만두 빚는 과정을 얼추 알고 있었다. 그 가게 앞 지날 때마다 걔네 엄마는 늘 만두소를 버무리고 있었고, 아빠는 반죽을 치대거나 커다란 찜기를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그분들은 인사를 하면 받아 줄 틈도 없이 바빴다. 그런데 이렇게 손쉽게 만두를 얻을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먹음직스러운 만두 한 알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사실 생긴 것도 별 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맛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제대로 씹기도 전에 왁 뱉고 싶었다. 만두소가 아무런 향 없이 그저 비린내만 났고, 덜 녹아 딱딱한 부분이 아삭아삭 씹혔기 때문.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맛 없는 만두, 거의 다 먹었을 것이다. 일단 배가 고팠고, 기차 시간이 올 때까지 그 안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으니. 


창 밖은 언제까지고 낮이 오지 않을 거처럼 푸르스름했다. 고풍스러운 역사 앞 광장에 그 사이 아직 잠들지 못했는데 곧 일어나야 하는 노숙인들의 꿈틀거림과 그 사이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 허이연 입김, 그리고 목줄을 하지 않은 비쩍 마른 개 한 마리가 어기적어기적 돌아다니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엄마는 하염없이 말이 없었다. 


 기차에 타서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아주 낯익은 역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역사 안, 아빠와 가장 친한 형제인, 둘째 삼촌이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엄마와 삼촌의 대화를 듣고는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되었다. 


엄마는 남편에 대한 억울한 속내를 하소연할 사람으로 자신을 다독여 돌려 새워줄, 끝끝내 아빠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삼촌을 택한 거였다. 나는 우리가 어디 먼데로 도망이라도 가는 줄 알았다. 적어도 며칠, 아니 단 하룻밤만이라도 엄마가 아빠를 기다리지 않는 밤을 보내보기를, 그리고 아빠도 이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하여 곰곰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겨우 한 번만 더 형 좀 이해해 달라는 삼촌의 설득을 듣고자 이른 새벽부터 먼데까지 찾아왔다니. 삼촌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사근사근 웃으며 엄마를 달랜 후 돌아갔다. 엄마는역 밖으로 나가보지도 않은 채 바로 서울행 기차표를 끊었다. 


나는 엄마가 끙끙 대며 들고 온, 욱여넣은 옷가지 때문에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그 커다란 가방을 발로 뻥, 차고 싶었다. 




냉동만두에 대한 첫 기억 때문이려나. 


나는 여전히 만두에 정이 안 간다. 내 손으로 사다 놓는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로. 다만 남편이 이 만두를 비상식량 정도로 생각하는 것인지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다 놓는다. 문제는 사다 놓고서 자발적으로 먹지 않는다는 것. 야식으로 먹자니 무겁고 한 끼로는 또 부족한, 반찬으로는 아닌, 만두를 어떻게 해치울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비좁은 냉동고 안, 돌덩이 같은 냉동만두가 무려 두 팩 (1+1 유혹 못 이기는 남편)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때마다 조급증을 느낀다. 


하여,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만두를 먹어 봤는데 그중 떡국만 한 게 없더라. 


떡국은 명절음식이라 어쩐지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 사실은 만들기 간단해 자주 해 먹는 메뉴 중 하나다. 거기다 만두만 넣으면 떡만둣국 완성. 


오늘 아침도 언제 사다 놨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물만두를 탈탈 털어 떡만둣국을 해 먹었다. 희멀건 국 사이로 섬처럼 동동 떠 있는 만두를 보니 문득, 그 안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쪼개지 않는 한 결코 알 수 없는 이 비밀한 음식이 참 가족이라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은 그저 하얗고 뽀얄 뿐인. 나는 만두피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만두를 떠 오물오물 먹었다. 


떡만둣국 만들기

1) 물에다 다시마, 멸치, 소고기 사태를 넣고 한 시간가량 삶는다. 
2) 사태를 건져낸 후 육수에 떡과 만두를 넣는다. 
3) 간을 한다. 
4) 계란 풀어 넣는다.
5) 식은 사태를 찢어 올린다. 

*이도 저도 귀찮은 사람에게는 시판 사골국에다 떡과 만두 넣고 끓이는 것을 추천. 그것만으로 만둣국다운 만둣국,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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