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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척하는 겁쟁이 Feb 08. 2024

"에코백 갖다 버려!"

"그 에코백 좀 갖다 버려! 저거 내가 버리든가 해야지."

딸이 난리를 친다.


"이게 어때서. 가볍고 막 들고 다녀도 부담 없고 물건도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나는 명품 가방 왜 드는지 모르겠더라."


사실이 그렇다.

나는 명품 가방이 한 개도 없다. 갖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없다. 여행에는 몇 백만 원씩도 쓰면서 물건을 사는 것에는 욕심이 없는 편이다.


근래에 출퇴근을 대중교통을 하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가방이나 신발 욕심은 사라졌다. 만원 버스 안에서 사람들에게 찡길 걸 생각하면 비싼 가방은 부담스러운 짐짝이 될 것이다. 지하철 계단을 뛰어오르려면 구두는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딸들은 엄마가 너무 후리(?)하게 하고 다니는 게 불만인가 보다.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부잣집 사모님들처럼 엄마를 입혀보고 싶다나 뭐라나.

아직도 엄마를 예쁘게 생각해 주는 딸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이지만

'엄마 이제 나이 들어서 그런 옷 입을 몸매가 안돼'

란 말을 속으로 삼킨다.



어느 날,

친척 어른들에게 용돈을 두둑이 받은 둘째 딸이 엄마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엄마, 내가 가방 하나 사 줄 테니까 골라 봐"

그러면서 엄마 취향을 고심하여 고른 가방 네 가지를 휴대폰으로 보여 준다. 엄마의 취향이라면 가벼워야 되고, 캐주얼하고 무난하면서 수납이 많이 되는....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가방을 여러 쇼핑몰과 수 백 개의 물건들 중에서 추려냈다.

'고마운 우리 딸. 공부할 시간에 시간 동안이나 이거 찾고 있었네? 좋아해야 돼, 말아야 돼?'


그중에 가장 맘에 드는 가방을 하나 골랐더니, 글쎄 가격이 10만 원이 넘는다!!

"세상에, 무슨 가방을 십만 원이나 주고 사. 고등학생인 네가 돈이 어딨 다고! 엄마는 안 사도 돼. 아님 더 싼 걸로 사줘. 이건 너무 비싸다."

"엄마, 요즘 아줌마들은 몇 백만 원짜리도 드는데 고작 이거 갖고 그래. 너무 싼 가방은 오래 못 써. 그리고 나 돈 많아. 걱정하지 마. 내가 이 정도는 사주고 싶어서 그래."


한 달 용돈 6만 원 밖에 안 되는 녀석이 나에게 10만 원짜리 가방을 사 준단다. 이 녀석을 키운 지 16년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의젓한 티를 낸다.


너무 비싸다고 무르는 엄마와 기어코 사주어야겠단 딸과의 실랑이 속에서 이게 부모와 자식의 마음이구나, 싶다. 나는 한평생 자식으로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크니 부모의 마음도 되어 본다.


샤넬백보다 값진 가방이 오늘 배송되어 내 품에 왔다.

내가 챙기던 아이가 이제는 나를 챙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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