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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Apr 18. 2024

꼬맹이 인터넷 소설 작가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없던 작가의 만행

나는 이미 중학교에 다니던 시기 인터넷 소설을 쓴 작가였다. 작가라고 하면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인터넷 소설 2편을 완결한 작가로 활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를 다니면서 어떻게 글을 썼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꽤 부지런한 편이었다. 조회수에 상관없이 나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끼며 60편 정도의 분량의 글을 2번이나 완결해 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연히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소설을 작성하던 시기 구독자들에게 받았던 메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작성한 글이 재밌다고, 그걸 보는 낙으로 힘든 학교 생활을 버틴다고 했던 메일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렇게 글로 누군가의 일상에 행복을 주던 사람이었다. 메일을 보다 보니 나의 과거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그 당시 작성하던 소설을 열어 보게 되었다. 중학생이 작성한 로맨스 소설이라니. 나는 이미 읽기도 전부터 나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했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 당시 나는 꽤 조숙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이 생각보다 유치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보면서도 심장이 조금씩 설레는 것이 이 어린 학생이 생각보다 남녀의 관계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등  있는 당시 유행하던 자극적인 요소가 다 집합된 흥미진진한 인터넷 소설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압권은 주인공 남녀의 연애 과정을 꽤나 상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내 기억으로는 소설의 장면을 작성하기 위해서 당시 나오던 로맨스 만화와 드라마를 대부분 섭렵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나의 로망을 반영한 그런 연애의 과정을 상세히 작성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걸로 기억한다. 성인이 된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어보니 현실과 로망은 정말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 꼬맹아, 나랑 사귀자."




꼬맹이라는 말은 그때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다. 생각해 보면 백설공주와 난쟁이처럼 키 차이가 엄청 많이 나는 수준도 아닌데 꼭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꼬맹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소설 안에서 주인공의 나이 차이도 5살이 채 나지 않았다. 그냥 그 당시에는 그게 로맨스 소설에서의 국룰과 같은 호칭이었다. 글을 쓰던 당시에는 꼬맹이가 맞았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꼬맹이라고 부른다면 아마 설레기보다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라고 생각된다. 물론 현재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67편

69편




내가 작성한 소설의 최종화 숫자이다. 숫자가 홀수로 끝나는 것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 시기에 나는 무엇인가에 빠지면 정말 강렬한 몰입을 했지만 변덕이 심한 탓에 금방 질려버리고는 했었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이게 아닌데? 별로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 몇 편 이내에 급 마무리를 지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는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한창 갈등이 고조되어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떠나 잠수를 타버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회 쯤 둘은 재회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소설은 끝이 나버린다. 이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꼭대기 지점까지 올라갔다가 밑으로 급하강 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평지였던 것과 같은 허무한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연재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 줬던 독자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나의 끈기가 부족한 태도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나름대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글을 쓰다가 갑자기 마무리를 하게 된 이유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과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글을 쓰고 싶어서 소설을 작성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작성할지, 몇 화 분량으로 내용을 구성할지, 최종적으로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세부적인 설정 없이 작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인가 시작할 때 최종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해두고 그 목표 지점에 다를 때까지 도전하는 편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있어야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서 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목표달성의 SMART 법칙에  따르면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어릴 때의 경험을 통해 이런 목표 설정의 중요성을 나는 누구보다 빨리 깨닫게 되었다.




지금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간다면 소설을 더 잘 쓸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내가 생각한 이야기와 감정은 딱 그 시기에만 나올 수 있는 순간의 것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나 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다시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랑 말랑한 대사를 내가 표현해 낼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성인이 된 지금의 내가 또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요즘 내가 글을 쓰며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나 있다.

내 글이 누군가의 일상 피식하는 웃음거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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