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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와 Apr 05. 2024

봄과 서울의 숨겨진 꿈의 정원, 여의도 샛강 공원

일본식 도시락과 함께 하는 샛강 산책


비로소 봄이 왔다.


 추웠던 계절을 뒤로하고 몇 번 얼얼한 비가 내리더니 따뜻한 온기가 우리를 감싼다. 봄은 항상 이렇게 갑작스럽다. 1월보다 3,4월이 더욱이 한 해의 시작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이 봄이라는 시작의 계절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버스를 타다가, 길을 걷다가 휴대폰을 꺼내 나무에 핀 벚꽃과 푸른 나무를 찍는다. 경이로운 것을 본 것처럼 모두가 이 계절의 화사함에 감탄하며 설레는 마음을 뿜어낸다.


 국내 최대의 빌딩 숲 한가운데 진짜 숲이 있다. 그 숲은 누군가에게 오지라고 느껴질 법도 하며 버드나무가 곳곳에 뻗쳐 조그만 강과 함께 초록의 춤을 춘다. 희귀한 동식물도 산다. 센트럴파크처럼 잘 정돈되어 인파로 북적이는 도시공원도 아니다. 노을이 지는 시간이 오면 꿈속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조용하고 아름답다. 도심 한 복판에 끼어 자연의 숨을 그대로 내 쉬고 있는 그런 꿈의 정원이 서울에 있다.


여의도 샛강공원


여의도 샛강공원

 나는 이따금씩 4월의 샛강을 생각해 왔다. 봄이란 게 왔다고 할 법한 그런 때에, 서울의 인파를 피해 조용히 봄을 즐길 장소를 애타게 찾아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생태공원인 여의도 샛강 공원의 거친 자연은 서울의 무서운 속도를 무시하고 천천히 존재한다. 자연의 동식물을 해치지 않기 위해 가로등 마저 존재하지 않는 공원, 왠지 알려지면 안 될 것처럼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꿈의 정원을 가기 위해 애인은 도시락을 쌌다. 자랑할 수밖에 없는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신길역


 샛강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샛강역에서 생태공원으로 들어오기, 신길역에 내려 2번 출구로 나온 뒤 문화다리로 생태공원에 진입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그중 나는 신길역으로 들어오는 루트를 좋아한다. 높은 곳에서 공원의 전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계단으로 내려가며 그 속으로 모험하듯 파고 들어가기는 서울에서 느끼기 귀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문화 다리 입구
다리 위에서 보이는 빌딩들
다리 아래로 보이는 샛강 공원

 문화다리에서 고개를 들면 빌딩 숲이, 고개를 내리면 진짜 숲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정장을 입고 바쁜 모습으로, 또 누군가들은 편한 복장으로 공원과 하나 되어 있다.

이상하지만, 나는 하늘이 언제나 샛강의 편을 들고 항상 좋은 날씨를 주고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자전거진입금지
초록색 숲에 햇빛이 들어온다.
엉켜있는 나무들


샛강 공원에는 나무가 참 많다.

그래서 햇빛이 강하게 드는 날이면 꼭 스팟라이트가 군데군데 켜진 듯한 바닥을 보여준다.


있던 길일까, 만들어진 길일까


 애인과 나는 자리에 앉아 소풍 할 곳을 찾아댔다.

한강 공원처럼 사람들이 군집해 있는 풍경이 아니다 보니 도저히 어디에 돗자리를 깔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예쁘다고 생각하는 곳에 돗자리를 깔면 우리가 꼭 이들의 자연을 침범하는 것만 같았다. 인간보다 자연의 힘이 더 강한 곳이었다. 그러다 인공적으로 관리된 듯한 평평한 초원이 나왔다. 5명 정도의 사람들이 돗자리에 앉아 떠드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야생 풀이 참 많다.


 돗자리를 피려고 하니 우직한 풀들이 바닥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이런 풀들을 최대한 피해 돗자리를 깔았다. 깎여진 풀들의 줄기 때문에 돗자리가 울퉁불퉁해 불편했다. 그럼에도 왠지 샛강에게 자리를 허락받은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애인과 나의 신발


 신발이 벗겨진 모양만 봐도 둘의 성격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가지런히 놓인 애인의 신발과, 뒤꿈치는 구겨지고 급하게 돗자리로 들어온 것이 보이는 엉망의 신발이 돗자리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전날 밤부터 열심히 준비했던 도시락


 어젯밤에는 마카롱을, 오늘 아침부터 점심까지는 유부초밥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 오니기리를 만들었다.

일본의 유치원에서 엄마들의 예쁜 도시락 배틀이 벌어지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과 더불어 간편식을 선호하는 국가의 특성상 도시락 문화가 발달했다. 애인 또한 일본인이기 때문에 도시락에 잘 쓰이는 몇 가지 음식과 귀여운 캐릭터 유부초밥을 만드는 것에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오니기리와 유부초밥
꽃과 토끼 마카롱


 봄 느낌이 나는 도시락이었다. 상추와 해바라기, 벚꽃 모양 마카롱도 있었다.

토끼해답게 토끼 마카롱도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봄이 처음 발을 딛는 3월도 토끼의 달, 묘월이다.


벚꽃과 마카롱


 4월을 상징하는 꽃이라면 역시 벚꽃일 테다. 샛강의 벚꽃은 생태공원 내부보다 샛강역 4번 출구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생태 공원에는 벚나무보다는 버들나무가 더 많다.


샛강과 다리


사진에 있는 나무다리는 샛강에 있는 다리의 상징적인 디자인이다. 원목으로 만들어져 튼튼하면서도 자연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 카메라를 들게 만든다.


고개를 드니 빌딩이 보인다.


 샛강은 참 이질적이다. 숨겨진 꿈의 정원 같다가도 고개를 들면 거대한 빌딩들이 하늘을 감싸고 있다.


버드나무와 샛강


 샛강에는 버드나무가 많다. 나는 어릴 때부터 버드나무를 좋아했다. 위로 솟구치는 나무가 아니라 아래로 처지는 나무라니, 그게 이 나무의 고집처럼 보였다. 제대로 늘어진 버드나무는 꼭 샛강에 빠질 듯 말 듯 강물로 세수를 하고 있는 버드나무를 본 기억도 있다.


뭐 하는 곳일까?


 이곳을 산책하다 보면 신기한 시설물들이 종종 보인다. 사진의 시설물은 나무와 나무를 엮어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쓰임이나 목적은 잘 모르겠다. 강강술래 같기도 하고 꼭 종교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안에서 무언가를 정리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일까?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노을이 제대로 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대쯤의 이 지하도는 어떤 노래를 틀어도 어울릴 것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한 명의 사람이 벤치에 앉아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모여진 흔적


 샛강은 항상 관리가 잘 되어있다.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모두가 이곳에서는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심리적 영향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샛강을 깨끗이 지키기 위한 깊은 노고가 먼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이렇게 잘 관리가 되어있는데도 관리인을 본 적이 없다. 요정이 관리하는 건가?


돌로 만들어진 길


 길 양쪽에 조약돌들이 길의 테두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런 것도 누군가의 손에 만들어진 것일 텐데, 그 모습이 정말 궁금하다.


샛강의 표지판들


 나 스스로도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표지판 찍는 걸 좋아한다. 아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픽토그램과 눈에 들어오는 색감 때문일까?


집에 갈 시간


열심히 계단을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막상 올라가려고 하니 계단이 꽤 가파르고 높았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두워지는 샛강


 샛강에는 가로등이 없다. 빛은 생명체의 활동 시간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인공빛이 있으면 샛강의 동식물들이 편히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샛강의 배려가 사랑스럽다.


퇴근 시간


 퇴근 시간이 다가왔고 도로가 점점 많은 차들로 북적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하철을 타고 갈 생각인데 일찍부터 북적스러운 신도림역이 무서웠다. 한적한 숲에서 지옥철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디보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자.


신길역


 의외로 신길역에는 퇴근길의 사람들이 아닌 샛노란 노을만 고독하게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전철 탑승구로 가니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인천행, 천안행 1호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도림역에서는 일어선 자세 그대로 잠을 자도 될 만큼 인파에 끼었다. 내 몸에서 샛강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슨 냄새인들 내가 다녀온 곳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고 그 마음은 지하철이 아닌 여기 내 브런치에, 이렇게 해소하게 되었다.


4월이 왔고 또 5월이 올 테다. 제철 딸기도 가고 제철 참외가 올 테다.

5월이면 샛강은 더 초록색일까? 아무렴 해가 길어질 테니 샛강의 낮도 길어질 것이다. 집에 와서 글을 쓰는 이 시간 깜깜해진 샛강의 식물과 동물들은 잠에 들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겠다.


아무렴 꺼지지 않는 서울의 밤에, 샛강은 밤의 이름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샛강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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