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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ul 11. 2016

가방을 만들다. 하나

내랑 가방 안 만들래?

차가운 밤공기는 이제 차라리 겨울이 가까워 오는구나 생각을 하게 만들던 2015년 어느 가을의 금요일 오후. 지금도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며 건강하게 지속되고 있는, 고등학교 동기 세명의 카카오톡 대화방은 내가 뜬금없이 친구들에게 던진 저 한마디로부터 시작됐다.

꽤나 결의에 차서 열변을 토하고 있을 나의 모습을 스마트폰 액정 너머에서도 알아본 것인지 나의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가방을 만들 수 있을지 저마다의 생각을 끄집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충전이 되는 가방은 어때?', '공대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가방을 따로 만들자' 와 같은 어딘가 그럴듯 해 보이는 아이디어와 '박대리 회의태도가 이게 뭔가', '나를 까면 너희를 모조리 까버리겠어'와 같은 별 의미없는 헛소리가 뒤섞인 긴 시간의 수다가 오간 끝에 우리는 조잡하게나마 가방의 형상을 한 듯한 무언가가 그려진 종이쪼가리들을 사진첩에 하나씩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초등학생들의 발명 경진대회를 보는 듯 하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장고 끝에 던져진 몇장의 그림을 시작으로 우리는 마치 오랜 시간 기다림에 기분이 매우 상해버린 동사무소의 민원인 마냥 서로의 가방에 갖가지 생각들을 쏟아내었다. 만일 충전 모듈을 만든다면 태양광 패널을 사용해야할지 새로운 충전 방식을 생각해야할지, 가방의 공간을 분할하게 된다면 어떻게 분할해야 가방의 무게가 고르게 분산이 될 수 있을지, 어떤 짐을 넣기 좋게 만들면 사람들이 가방을 편하게 쓸 수 있을지, 가방의 위쪽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장착하면 어떨지 등등. 비록 처음 의도했던 바와 달리 어떤 일관된 방향성은 완벽하게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꽤나 그럴듯하면서도 신박하다 생각되는 아이디어들의 향연이 이어졌다. 물론 모두들 예상했겠지만 그중에 지금의 가방에 반영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렇듯 우리는 시중에 나와있는 많은 가방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별 의미없는 잡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해내었다. 가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가 어디서 만드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언제나 가방들이 진열대에서 나를 맞아주는 것으로 보아 그걸 만드는 누군가가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는 이야기일테고, 그렇다면 뭐가 어찌됐건 시작만 하면 가방은 만들어진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가방을 만들게 될까, 직장 생활의 고단함에 지쳐 최면이 걸린 것 처럼 시작한 그 길고도 긴 대화의 향연은 새벽 두시를 훨씬 넘은 시간에서야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4개월 뒤,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안녕하세요. 박인혁입니다. 왜 내가 원하는 여행 가방이 세상에 없을까 고민 하다가 다니던 회사를 작년 초 그만두고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양천가방협동조합의 장인들께서 만들어주시는 제 가방, 첫번째 가방으로 두 번의 펀딩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만났습니다. 약 1,500 분의 소중한 고객님들께서 저의 시작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가방을 만들다'는 그 첫발을 내딛기까지 제가 겪은 일들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어서 회사 때려치고 만든 여행 가방. 출시 반 년 만에 1,500명의 선택을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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