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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Apr 17. 2024

에덴동산에 오르면 보이는 것들

오클랜드 마운트 이든

  

  나에게 오클랜드는 목적지 즉 데스티네이션(Destination)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저 뉴질랜드에 도착하거나 출발할 수 있는, 그래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국제공항이 있는 외국 도시에 불과했다. 딱히 쇼핑을 즐기는 것도 아니어서 퀸 스트리트를 걸어 다녀도 그냥 무덤덤했다. 워낙에 뉴질랜드의 자연을 사랑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오면 이런 도시는 저절로 내 관심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클랜드에 사는 친구 집에 머물면서 오클랜드에 대해 몰랐던, 그래서 새로운 매력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오클랜드는 '화산 도시'였다. "뉴질랜드가 화산대에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심드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무려 14만 년 동안 53개의 화산이 솟아올랐다는 얘기를 들으니 "아, 그래?" 하고 자연스럽게 귀를 쫑긋하게 됐다. 그래도 앞으로 분출될 위험은 없다고 했다. 최근에 화산이 폭발한 아이슬란드와 달리 "여기서는 대피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다행이다 싶었다. 오클랜드에서 가장 높은 화산구가 바로 마운트 이든(Mount Eden), 에덴동산이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친구와 나는 마운트 이든에 가기 위해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선크림도 잔뜩 발랐다. 마운트 이든에 갔다가 근처 힙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오늘의 일정. 카페 거리 근처 그늘에다 주차를 하고 마운트 이든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운트 이든의 대형 화산구 © 2024 킨스데이


   "여기 높이가 196m인데 이게 힘들면 너 체력에 문제 있는 거야. 예전에 톰(친구가 키우는 8살 된 개)이랑 여기 거의 매일 왔었어." 친구는 나한테 급 경고(!)를 날리더니 긴 다리로 성큼성큼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야, 나도 한때 락클라이밍했던 여자야. 이 정도는 껌이라고!' 울컥해서 되받아치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힘들어서 헥헥대면 어떡하지. 코로나 이후로 살도 찌고 운동도 게을리했는데...'라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질세라 그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시작점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계속 걷다 보니 좁은 계단이 나왔다. 올라가는 사람들과 내려가는 사람들로 계단은 북적였다. "여기가 유명하긴 하나 보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이윽고 널찍한 대형 화산구가 눈에 들어왔다. 녹색빛 잔디로 뒤덮여있는 화산구를 보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화산이 분출했다고?" 순간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우론의 눈'이 떠올랐다. 한없이 평화로운 오클랜드가 만약 사우론이 점령했던 어둠의 땅이었다면 어땠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좀 더 걸어 올라가니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마운트 이든에서 본 오클랜드 전경 © 2024 킨스데이
마운트 이든에서 본 오클랜드 전경 © 2024 킨스데이


  "여기가 에덴동산이야? 우와, 우와, 우와." 푸르른 하늘 아래 탁 트인 360도 파노라마 광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날씨가 좋아서 스카이 타워를 비롯해서 저 멀리 홉슨빌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지리에 관심이 많고 지속가능한 인프라에 대해서 박사학위를 딴 친구는 이 방향, 저 방향 손가락으로 랜드마크를 가리키며 열심히 내게 설명을 해줬다. 스카이빌딩들이 있는 상업 지역, 1층, 2층짜리 집들이 빼곡한 주택지역, 차이나타운 등 오클랜드의 다채로운 모습을 빙 둘러볼 수 있었다. 그동안 CBD나 프린세스 워프 쪽에만 주로 머물러서 그 일부만 보고 "오클랜드는 이렇구나, "라고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치 강남역이나 서울역 근처만 보고 서울에 대해 안다고 짐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디 오클랜드에 대한 편견뿐이었겠는가. 어딜 가서 무엇을 하나 내가 중심이 되는 사고와 태도로 평생 살아오지 않았던가. 갑자기 친구한테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그리고 많이 보고 경험해야 한다. 오색빛깔 오클랜드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오늘 브런치는 내가 사야겠군."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다들 오클랜드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나도 이 순간, 이 풍경을 기억하기 위해 연신 스마트폰의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생각보다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는 길이 완만해서 별로 힘들지 않았다. 아직 체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마운트 이든에서 내려온 나는 친구와 함께 카페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나름 운동을 했다고 배가 고팠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카페마다 야외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우리는 조용한 카페를 발견해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는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나는 아보카도 샐러드를 주문했다. 먹는 데 진심인 우리는 평소처럼 브런치를 맛있게 먹으면서 저녁 메뉴인 바비큐 준비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했다. 계산을 마치고 카페를 나오면서 친구에게 "오클랜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서 고마워.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 "하고 내 마음을 표현했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의 짧은 여정을 다시금 떠올렸다. 오클랜드의 에덴동산, 마운트 이든에서 내가 본 것은 오클랜드의 360도 파노라마 풍경만이 아니었다. 옹졸하고 편견으로 가득 찬 두 얼굴의 골룸같이 보기 흉한 내 자신을 보았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 그런 어글리 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 그래서 안주하지 않고 성장하려는, 노력하려는 의지.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공감 가득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내 관점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 제 3자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연히 시간도 걸릴테고 연습도 많이 해야하겠지.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역시 에덴 동산에 다녀오길 잘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한 다음 저녁 준비를 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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