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스데이 Mar 12. 2024

신비롭고 오래된 작은 동네 책방 투어

뉴질랜드 헌책방 탐방기

 

  로컬 전문가 연세대 모종린 교수는 말했다. 로컬 지역이 살아나려면 기본적으로 베이커리, 카페, 서점, 게스트 하우스가 모여 협업해야 한다고. 뉴질랜드는 어떨까? 오클랜드, 웰링턴, 크라이스트 처치와 같은 도시를 제외하고는 고만고만한 타운을 중심으로 동네가 형성되어 있다. 아시아인들이 늘어나면서 좋은 학교를 중심으로 인구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관심 있게 보는 곳은 바로 동네 서점이다. 특히 헌책방 투어를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숨겨진 보석을 찾아내듯 새로운 지역에 갈 때마다 신비롭고 오래된 동네 책방을 방문하는 것은 내 안식월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책방 주인의 취향도 살펴보고 좋아하는 작가의 영어 원서를 싼 값에 득템 하는 소확행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샤넬백은 없지만 난 이런 책을 읽는 여자야"라고 지적 허영심을 가장해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부 때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던 것도 요런 책부심에 기여했을 수도. 그럼 이제 나와 함께 뉴질랜드의 작은 책방 투어를 힘께 떠나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책방은 로토루아의 아틀란티스(Atlantis)다. 시내에 있어 차로 접근하기 좋다. 정갈하게 정돈된 서가와 나름 풍성하게 보유한 서적이 특징이다.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일만 하는 I형 사장님도 마음에 든다. 여기선 책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데 전반적으로 책이 가진 가치를 소중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구석에 놓인 검은색 가죽 소파에 앉아 편하게 책을 읽을 수도 있어 특별히 책을 사지 않아도 시간이 훅 흘러가는 곳이다.  나는 여기서 E.M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 이안 맥큐언의 <속죄>, 스캇 피츠제랄드의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등의 책을 구입했다. 가격도 저렴하다. 책 상태도 중 이상으로 괜찮은 편이다. 책을 여러 권 사면 재활용 종이백에 넣어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자원순환으로 환경에 이바지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끼는 그런 곳이다.


뉴질랜드의 양양, 서핑 타운 라글란의 웰리드 서점 © 2024 킨스데이

 

   다음으로 소개할 곳은 뉴질랜드의 양양, 서핑 타운 라글란의 웰리드(Well Read) 서점이다. 몇 백 년도 넘었을 것 같은 편백나무 뒤에 있으며 현지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책방인데 아기자기한 공간에 주인장의 취향과 더불어 각국에서 모여드는 서퍼들의 선호 카테고리가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명상, 스피릿, 자연, 지속가능성, 가드닝, 빈티지 등 엄선된 책들이 깔끔하게 꽂혀있다. 나는 여기서 어린 시절 즐겨본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원서를 구매했다.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는 대표적인 중고 서점이 두 곳이 있는데 아티 비즈(Arty Bees)페가수스(Pegasus)로 각자의 개성적인 스타일이 돋보인다. 아티 비즈는 거의 새책만 취급하는 서점이나 동네 도서관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책장 사이사이 널찍한 공간에 깨끗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백발이 고운 시니어 여성 분과 레인보우 헤어 스타일의 젊은 여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책뿐 아니라 엽서 같은 굿즈도 판매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이완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 On the Chesil Beach>와 반값 세일을 하고 있던 아동서적 로날드달의 <더 위치스, The Witches> 그리고 엽서를 한 장 구매했다. 이에 반해 페가수스는 오래된 책 냄새가 폴폴 나는 전형적인 헌책방의 모습 그 자체인 곳이다. 미로 같은 공간에 나무 사다리가 있고 언제부터 꽂혀있었을지 상상하기 어려운 골동품 같은 책들이 곳곳에 꼳혀있다.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클래식 도서 코너였다. 이름을 들어본 듯한 영미 작가들의 고전 소설들이 즐비해서 한참을 고민하며 책을 꺼내보고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할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다 사고 싶을 정도로 퀄리티 좋으면서 가격도 저렴한 책들이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내 여행 캐리어 공간은 한정적이라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와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 Of Mice and Men> 두 권을 구매했다.


해밀턴의 브라우저스 북샵 © 2024 킨스데이


  해밀턴의 브라우저스 북샵(Browsers Bookshop)도 놓치기 아까운 동네 서점이다. 중심가에 있고 모던한 빌딩 1층에 입점되어 있어 북까페 같은 인상을 주는 깔끔한 곳인데 입구 한켠 책장에 책들을 아주 높게 꽂아놓은 것이 특징이다. 책을 구입하면 쌈박한 브랜드 로고가 찍힌 종이봉투에 책과 북마크를 담아준다. 책들의 상태가 좋고 시내 중심에 위치해서 그런지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는 않지만 방문 기념으로 기내에서 본 HBO 시리즈 <줄리아 차일드>에서 여러 번 언급된 존 업다이크의 책과 이안 매큐언의 <Machines Like Me>를 구입했다. 


이번 뉴질랜드 여행에서 구매한 헌책들 © 2024 킨스데이

  

  헌책방에서의 구매팁을 공유하자면 절대 망설이면 안 된다는 점이다.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바로 구매해야지 다음이란 없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을 쓴 작가의 성(Family Name)을 기억해 두면 원하는 책을 찾기가 편하다. 카테고리 > 작가의 성 이런 식으로 분류해 놓은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카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의 작품을 찾고 싶다면 소설 섹션에서 I를 찾으면 된다.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한 뒤 여러 손을 탄 중고 서적에 대한 시선이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오래된 책 냄새와 얼룩이 있는 그리고 가격이 저렴한 헌 책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책장을 넘겨가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옛날 사람의 입장에서는 헌책방은 선물 같은 존재이며 여행할 때마다 반드시 들려야 할 장소이다. 뉴질랜드 사람들도 중고책, 중고 가구 등 중고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없어서 그런지 이렇게 동네마다 헌책방과 OP Shop(Opportunity Shop의 준말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가게 같은 곳)이 존재하고 활기차게 운영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종합 독서량이 일 년에 4.5 권이라는데 책을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6.5%)라고 한다. 맞다. 다들 바쁜 세상이다. 플랫 화이트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우아하게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어쩌면 헌책방에서 고른 소설 책 한 권이 더욱 소중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하루 중에 10분이라도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나에게 주는 행복권이자 소확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플랫 화이트로 할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