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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23. 2024

아침커피를 끊었다.

아침커피를 마시지 않은 지 3주가 넘었다. 나는 3주 전부터 갑자기 아침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마치 비장한 음악과 함께 많은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할 일처럼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아침에 커피 한잔 안 마시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별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인생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커다란 사건이다. 요즘 나는 아침에 커피를 건너뛰고 점심에 커피 한잔, 저녁에 커피 반잔 정도를 마시고 있다. 매일 칼같이 이렇게 지키는 것은 아니다. 평균 하루에 커피 한잔 반을 마시고 있다는 의미다. 그전에 나는 하루에 커피를 평균 3.5잔을 마셨다. 하루에 커피 세 잔은 필수, 네 잔은 선택이었다. 드물게 커피를 다섯 잔까지 마시는 날도 있다. 그런 내가 커피를 하루에 한잔 단위로 마시는 일은 아이를 임신하고 모유수유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다.


나의 긴 커피역사에 이렇게 중요하고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공복커피를 끊기로 선언한 후로 17년 만에 일어난 급진적인 변화다. 내가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초등학교를 걸어서 40분 거리에 다니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리, 중학교는 읍내에 있었다. 그전까지 용돈이 없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차비와 용돈을 받게 되었다. 읍내 버스 정류장에는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친구들은 자판기에서 뜨거운 우유나 율무차를 뽑아 마셨다. 나는 밀크커피를 마셨다. 달달하고 쌉스레한 그 맛,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밀크커피를 마셨다. 25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중학교 동창과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친구가 되었다. 둘 다 비슷한 가정환경 때문에 더 친해졌지만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타 마시던 믹스커피가 없었다면 스무 살이 넘었을 때까지 절친으로 지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번 돈을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데 탕진했다. 물론 술값으로 나간 돈도 많았지만 남들이 커피를 카페에서 비싸게 마시는 생각 없는 애라는 말을 하든 말든 나는 카페를 집 드나들듯 했다. 그때는 원두커피가 싱겁고 밍밍해서 싫었다. 나는 설탕도 프림도 넣지 않은 가루커피를 아주 진하게 마셨다. 친구들이 사약 마시냐고 놀릴 정도였다. 집에서도 매일 아침 공복에 진하게 탄 커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아주 뜨겁고 진한 커피가 목에서 뱃속으로 내려갈 때의 찌릿한 통증을 즐겼다. 그래서 반드시 공복에 커피를 마셨다. 서른 즈음의 어느 날 공복에 마신 커피 때문에 속이 아파서 너무 힘들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공복커피를 끊었다. 매일 아침 오로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밥을 먹었다. 밤에 커피 한잔 더 마시고 싶을 때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커피를 마실 생각에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아침 커피를 위해 밥도 챙겨 먹고 계란이나 떡을 챙겨 먹게 되었다. 그러면서 커피 때문에 속이 쓰린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아침커피의 시대가 17년 동안 이어졌다. 3주 전까지는 그랬다.


내가 아침커피를 끊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무릎을 살짝 다쳤는데 걸을 때마다 아팠다. 그러다 말겠지 참으면서 보름을 버텼는데도 낫지를 않았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무릎에 물이 찼다고 한다. 무슨 말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왜 가만히 있는 무릎에 물이 차지? 그 물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런 의문에 브레이크를 거는 의사의 말, 주사 맞고 약 먹으면 좋아질 겁니다. 어디? 무릎에요? 네 무릎에 주사 놓을 거예요. 나는 그대로 스프링처럼 튕겨서 집으로 올뻔했다. 무슨 말이지? 무릎에 어떻게 주사를 맞는다는 건가. 생각만으로 통증이 느껴졌다. 주사를 강하게 권하는 의사의 말에도 나는 체외 충격파와 약물로 일단 치료해 보기로 했다. 반드시 식사 후에 먹으라는 그 약은 먹자마자 17년간 잊고 지내던 공복커피를 떠올리게 했다. 속이 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하루 이틀은 버텼다. 결국 나는 아침커피를 끊기로 했다. 아침 커피가 아니라 커피를 끊어야 하겠지만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시는 것만으로 내 하루 커피 섭취량은 반으로 줄어든다.


나는 브런치 모임이 있는 아침에도 8시에 커피를 마시고 9시 모임에 나간다. 아침에 이미 커피 두 잔을 마신 셈이다. 브런치 모임이 끝나고 집에 와서 간식으로 빵이나 떡, 혹은 과자를 먹으면 커피는 따라오게 돼있다. 커피 세 잔.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는 당연한 거다. 그렇게 하루에 커피 세네 잔은 우습다. 그런데 아침 커피를 끊으면 브런치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이 첫 커피다. 저녁 커피 전에 간식을 먹을 때 남편이 마시는 커피를 몇 모금 얻어마신다. 그리고 저녁에 커피 한잔을 내려서 반 이상 남긴다. 그렇게 커피를 줄이다 보니 몸이 아주 건강해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졸음이 밀려온다. 두통도 따라온다. 나는 며칠간 두통에 시달리면서 버텼다. 아침에 커피 대신 생강차나 유자차를 마시면서 견뎠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커피를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생각조차 안 하는 날도 있다. 고작 몇 주 만에 이렇게 달라지다니 놀랍다. 이제는 정형외과 약을 더 먹지 않고 있다. 병원에서 의사가 조금 더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속 쓰려서 못 먹겠다. 커피를 반 이상 줄였는데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커피를 완전히 끊지 않은 탓이겠지만 그래도 하루 한잔의 커피는 도저히 양보할 수가 없다.


나의 커피의 역사는 우습게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시간의 기록이다. 중학교 때 친구와 마시던 믹스커피는 힘든 상황을 견디던 친구와 나를 위로해 주는 유일한 사치였다. 내가 그 친구보다 조금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에게는 커피와 엄마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에게는 커피는 있었지만 엄마가 없었다. 그렇게 불행이 비슷하게 닮았던 나와 그 친구는 커피 한잔으로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랑했다. 내가 공복커피를 끊은 것은 내가 나를 걱정하고 위했던 첫 순간이었다. 공복커피의 쓰라림을 즐길 만큼 나는 나 자신에게 가혹했다. 더 진한 커피를 마셔야만, 자신에게 더 쓰린 통증을 줘야만 했을 만큼 나는 그때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공복커피를 끊기로 했을 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를 챙겨 먹이고 다독이기 시작했다. 지금 아침커피를 끊으면서 이제는 정말 내가 많은 것을 나를 위해 참고 양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커피쯤은 과감히 양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진지하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아침커피를 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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