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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Mar 02. 2024

시어머니가 내 엄마였다면


내가 쌍둥이를 임신해 고생할 때, 안쓰럽다며 눈물을 흘린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시어머니’였다.


지금도 내가 아기 둘을 동시에 키운다며 늘 걱정하는 사람은 나의 시어머니다. 아직도 어머니는 내가 힘들 때나 아플 때 통화하면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다. 여장부처럼 씩씩하고 강한 분이기에, 어머니가 그럴 때면 나는 당황해서 어머니 저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며 다독이기 바쁘다.

 

어머니는 사랑이 많다. 마치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포용과 사랑의 감정이 끝없이 솟는 샘이라도 가슴 한곳에 갖고 계신 걸까. 철없는 소리를 해도 이해받고 따듯한 말로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짜 어른이구나 싶은 사람. 이런 사람이 진짜 엄마구나 싶은 사람.


이런 사람을 시어머니로 둔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어머니로 둔 내 남편은 더더욱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남편 옆에 붙어서 그 복을 야금야금 같이 받아먹고 있는 중이다.  


내가 처음 시집와서 제사를 지낼 때, 어머니는 내가 설거지도 못하게 하셨다. 그러곤 하는 말이 “장씨 집안 제사에 왜 여자들이 일을 해.”라고 하셨다. 나는 장씨 집안 아들들이 제삿상에 절을 하는 동안 어머니와 식탁 앞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쓴다며 일을 그만뒀을 때, 누구보다 나를 지지해준 사람도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여자도 공부를 해야한다며 좋아해주셨다. 글을 쓰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냐며 남편에게 내게 밥도 차려주고 내조해주라고 말하신 분도 어머니시다. 그도 그럴 것이 시할머니도 농사를 지으시며 영어와 일본어를 독학하셨다고 했다.


“내가 내 자식 귀하듯, 며느리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인데 왜 함부로 대해.”


이게 어머니가 며느리를 대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늘 귀하게 대하고, 딸처럼 대하신다.  


나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어머니가 제 롤 모델이에요’라고 말한다.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다. 나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부모다운 부모가 되고 싶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꼭 집어 대답하긴 어렵지만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일. 올바르게 사랑하는 일이라고 답하고 싶다.


시어머니가 내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뱃속에 잉태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시어머니가 내 엄마였다면 나도 배려심 있고 사랑 많은 사람이 되었을까. 남편이 십년이 넘게 내게 생선가시를 발라주는 걸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늘 부모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의 세상은 부모가 만든다. 어떤 관계보다 끈끈하고 깊어서 살아있어도 죽은 후에도 부모는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부모는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기들이 태어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남편이 있어서, 좋은 시부모님이 있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어서 나는 좋은 어른이 될 거라고 내게 말해준다.


그렇다고 내 부모님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받은 상처를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 상처는 내 사랑의 밑거름이다. 어떤 것이 아이에게 상처주는 행동인지 잘 알고 있어서,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해야하는지 알게 되어서, 좋은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을 구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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