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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물개 Apr 24. 2024

05. 강아지와 이사 가기

생후 5개월 강아지의 새 출발

 4월 초에 룽지를 만나 5월 중순에 이사를 가기까지 한 달 보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먹여주고 놀아주고 재워주면서 별다른 걱정이나 스트레스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교육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배변훈련이나 리드줄에 적응하는 것과 내가 주먹을 쥐며 수신호를 하면 앉아서 기다리는 등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가르쳤다. 손이라고 말하면 앞발을 준다거나 빵 하면 철퍼덕 쓰러진다거나 하는 것들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가르치지 않았다. 사람이 보기에 귀엽고 즐거울 수 있겠지만 강아지에겐 딱히 도움 될 게 없어 보였다. 엎드리는 것까지는 유용하겠다 싶어서 가르치고 싶었지만 후에 앉은 상태에서 기다리는 게 가능해진 다음 천천히 가르쳤었다. 

 하루는 룽지가 소파 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뒹굴거리면서 놀다가 소파 밑으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었다. 룽지가 떨어진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너무 놀랐었는데, 이내 일어나더니 오른쪽 앞다리를 들고 절뚝거리며 돌아다녔다. 가까이서 보니 발이 덜렁덜렁 흔들리길래 뼈가 빠진 것 같았다. 큰일이다 싶어서 룽지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나니 웬걸, 잠깐 눈을 뗐다 돌아보니 룽지가 멀쩡하게 잘 걸어 다니고 있었다. 좀 어이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충격 때문에 병원에 데려갔었는데, 수의사님께서 룽지의 발을 만져 보시더니 다행히 룽지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뼈가 다 자라서 붙은 상태가 아니라 괜찮다고 했었다. 아직 뼈가 자라면서 물렁뼈 같은 상태라고도 했던 것 같은데, 안심이 되면서도 되게 신기한 순간이었다. 엄청 뛰어놀기도 하고, 점점 털도 부스스해지는 게 애가 점점 자라고 있긴 하구나 싶었는데 내 생각보다 룽지는 아직 많이 어린 상태였다. 

 룽지는 겉모습도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었다. 원숭이 시기라고 해야 하나. 털 상태가 달라지면서 애가 전체적으로 못생겨 보이기 시작했었다축 쳐져있던 귀도 점점 쫑긋해지기 시작했고, 코에 있던 핑크빛 무늬들도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눈은 뭔가 억울해 보이는 느낌을 풍기기 시작했었다. 불쑥 초췌해진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달까. 하루하루 같이 살면서 볼 때는 룽지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잘 느낄 수 없었지만 그동안 찍은 사진을 쭉 넘기면서 보다 보면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 티가 나더라. 룽지가 나중엔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정말 감이 안 잡혔다. 





 5월이 되어 이사를 앞두고부터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 강아지 이동장도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이사할 때 룽지를 이동장에 넣어서 데려가려는 것도 있었고, 이사를 가서 룽지의 집으로도 쓸 생각이었다. 문제는 어느 사이즈를 시켜야 하는가였다. 앞으로도 계속 집으로 쓰려면 룽지가 크는 것까지 생각해서 무작정 큰걸 사면 그만이지만 사이즈가 커질수록 가격도 비싸지니까 가지고 있는 예산과 룽지의 성장 예상치 사이의 적절한 지점에서 선택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룽지가 앞으로 얼마나 더 클지도 문제였다. 룽지의 견종도 모르고, 룽지의 어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 도저히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러다 한 어플을 통해 성견이 됐을 때의 몸무게를 예측해서 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강아지의 현재 나이와 몸무게, 성별, 견종을 입력하면 해당 견종의 나이와 성별에 따른 평균 체중 그래프를 보여주는 신기한 기능이었다. 

 견종은 모르니까 일단 가장 유력했던 바센지로 선택하고, 룽지에 관한 다른 정보들까지 입력하고 나니 다 자라면 체중이 얼마나 나갈지 알려주더라. 아마 12kg~15kg였나?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정도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 룽지가 9~10kg 사이에서 성장을 멈춘 걸 보면 바센지는 아닌가 보다. 어쨌거나 당시엔 룽지의 견종을 정확히 모르니 '아이고 생각보다 많이 크겠네'하고 대략적인 참고치 정도로만 알아두기로 했다. 





 고민 끝에 일단 작은 것부터 사보자 해서 작은 걸 샀는데 당장에도 룽지가 들어갈 수가 없는 사이즈였다. 들어가 보라고 안에다 간식을 몇 개 넣어줬더니 몸은 밖에 두고 얼굴만 쑤욱 넣어서 간식만 먹고 돌아 나오더라. 이래선 집은커녕 이동장으로도 쓸 수가 없었다. 크기를 참조해서 산 두 번째 이동장은 성공이었다. 룽지의 집이 통째로 들어가고도 룽지가 들락날락할 수 있는 크기였다. 

 룽지가 이동장에 적응하게 만드는 건 자신이 있었다. 룽지가 간식을 워낙에 좋아하는 아이라 이동장 안에 간식 좀 뿌려두면 금방 적응할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실제로도 그렇게 됐고. 간식도 간식인데 집을 넣어놨던 것도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냥 이동장에다가 방석만 깔아 뒀으면 낯설어했을 법도 한데 들어가서 잠을 자던 집을 통째로 넣어두니 조금 더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동장까지 준비를 마치니 룽지에 관해서는 더 준비할 게 없었다. 사료나 간식이야 평소에 충분히 구비해두고 있었고, 배변패드도 넉넉히 마련해 뒀고, 이동장과 집이 한 번에 갖춰졌고. 그나마 남은 게 현관문 쪽에 설치할 안전문이었는데, 이사 갈 곳 현관의 폭을 몰라서 이사를 가고 나서 알아봐야 했다. 

 지금은 안전문 없이도 생활이 가능하지만 룽지가 어릴 적엔 안전문이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외출할 때마다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절대로 맘 편히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나가려고만 하면 룽지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보다 먼저 현관문 앞으로 뛰어가곤 했었다. 그러다 한 번은 현관문 앞에 빨래건조대를 눕혀서 간이로 안전문을 만들어 봤는데 머리부터 집어놓고 쏙 하더니 순식간에 뚫고 나가버리더라. 녀석이 사실은 날씬한데 털 때문에 통통해 보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외출할 때마다 룽지한테 오래 먹을 수 있는 껌 같은 간식을 주고 도망치듯 후다닥 집에서 나오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나가는 게 좋지 않은 방식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서 간식을 주고 다녀온다고 인사를 한 다음 나왔었는데 그래도 크게 효과가 있지는 않았다. 사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룽지는 내가 외출할 때마다 늑대처럼 아우우우 하며 동네방네 울었었다. 그래서 외출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곤 했었다. 





 이사 하루 전날, 이삿짐을 차에 옮기는 동안 현관문과 대문을 다 열어뒀었는데 당연히 룽지가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짐을 들고 자꾸 집 안팎을 들락날락해서 따라다니기도 불편했을 텐데 그저 신나서 따라다니더라. 그러다 길 저 아래쪽에서 목줄 없는 한 검은 강아지가 우리 집 쪽으로 올라왔었는데, 뭔가 걸어오는 폼이 사나운 애는 아닌 것 같고 룽지를 보고도 천천히 걸어오길래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내버려두었었다. 치와와처럼 보이던 그 강아지는 우리 집 대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냄새를 좀 맡더니 도로 왔던 길로 내려갔었다. 룽지는 그 친구가 궁금했는지 냄새를 맡다가 걔가 내려가니까 따라서 졸졸졸 내려가더라. 그 모습이 귀여워서 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잡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었다. 그런데 왠지 나는 룽지가 그대로 가버릴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었다. 나 없으면 그렇게 울어대는 녀석인데 나한테 다시 올 거라는 믿음이 당연하게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쯤 룽지는 나를 돌아보더니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나한테 우다다다 달려왔었다. 믿던 대로였다. 


 대망의 이삿날. 원래는 룽지를 이동장에 넣어서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쉽지 않아서 안고 가기로 했었다. 룽지를 안고 차에 타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차에 타고나서는 더 문제였다. 룽지가 차에 타는 게 익숙지 않아 한참을 가만히 있질 못 하면서 불안해했었다.

 룽지는 극도의 긴장 내지 스트레스 상태가 되면 특유의 표정을 짓는다. 눈은 게슴츠레하게 뜨고 입꼬리에 주름이 생길 만큼 입을 길게 벌리고 헥헥거리는 표정이다. 딱 봐도 힘들어 보여서 보는 내가 마음이 아픈 그런 표정이다. 지금까지 그런 룽지의 모습을 두 번 있었는데, 처음으로 봤을 때가 이사를 때였다. 차를 타고 출발을 하는데 한동안은 그런 상태를 유지했었다. 애가 진정할 있게 달래 보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가만히도 있어보기도 했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다. 그냥 스스로 적응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니까 체력이 소진됐는지 잠들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었는데, 실내에서만 배변을 하는 룽지를 위해 준비해 온 배변패드를 가지고 내렸다. 실외라도 배변패드를 깔아주면 익숙하니까 효과가 있겠지 싶어서 나름 준비를 했던 건데 먹히지 않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바빠서 레드카펫처럼 깔아준 패드는 있으나 마나였다. 그래도 앞으로 또 장시간 이동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실외배변이라도 해야 하니까 계속 돌아다녀 봤지만 도저히 쌀 기미가 안 보였다. 그렇게 계속 룽지랑 돌아다니다가 부모님이 룽지를 데리고 이리저리 다녀도 보고 최대한 소변을 본 후에 출발하려고 했었지만 효과가 없는 듯싶더니 출발 직전에 겨우 소변을 보고 출발할 수 있었다.

 차에 타서 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이내 다시 잠들고는 이후 별일 없이 새 집에 도착했었다. 청소를 하고 부모님과 함께 이삿짐을 나르는 동안 룽지는 차 안에 있었는데, 창밖으로 내가 중간중간 보이니까 잘 버티는 듯 보였다. 우당탕탕 이사가 끝난 후 다 같이 점심밥을 먹고 부모님들은 떠나셨다. 룽지랑 단둘이 새 집에 덩그러니 남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이사를 오기 전에도 룽지랑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긴 했지만 그땐 가족들이 있었고, 이젠 가족들과 멀리 떨어진 채로 룽지랑만 살아야 하니까 뭔가 집이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우리 순진한 룽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집 안 곳곳을 킁킁거리며 탐색하기 바빴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룽지의 집은 내 침대 옆에 두기로 하고, 그 옆엔 룽지가 잘 적응할 수 있게 내 옷이 담긴 빨래망을 뒀다. 평소에도 내 빨래더미에 얼굴을 박고 자던 아이였으니까 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룽지가 계속 그 근처에 있었던 걸 보면 나름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저녁까지 이삿짐을 풀면서 시간을 보내고 룽지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밤까지 신나게 공놀이를 했었다. 그런데 전에 살던 집에는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어서 몰랐는데 이사를 오고 바닥에 아무것도 깔려있는 게 없으니까 바닥이 미끄러운지 룽지의 발이 자꾸 미끄러지더라. 엄청 뛰어놀긴 했지만 그대로 두면 나중에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바닥 문제도 앞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룽지는 이불에 오줌을 시원하게 갈기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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